[TOPIC] 국내 첫 상업용 원전 고리 1호기 폐쇄 탈원전 글로벌 대세 vs 에너지 안보 지켜야
고리 원자력 1호기(사진) 폐쇄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58만7000㎾급)’의 가동이 영구정지됐다.
19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이로써 가동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국내에서 상업용 원전이 퇴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원전 효시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는 원전을 둘러싼 찬반 논란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탈(脫)원전으로 기우는 모양새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정부 공약을 살펴보면 에너지 정책의 골자는 탈석탄·탈원전, 친환경이다.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은 신규 원전 전면 중단과 건설 계획 백지화, 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탈핵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을 공약한 바 있다. 실제 지난 5월 15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일시 가동 중단(셧다운)하라는 ‘3호 업무지시’를 내렸고,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건설 예정인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시공 설계를 보류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공사(공정률 30% 수준) 중단 여부도 정부가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련의 조치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강하다. 당장 공정률이 30%에 달하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중단할 경우 상당한 기회비용이 든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너지 전공 교수 230명은 최근 성명에서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소수 비전문가의 ‘속전속결식’ ‘제왕적 조치’라고 규정하면서 국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력 수급 문제없나?
▷‘원자력 20% 수준 유지해야’ 의견
논란의 핵심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탈원전 정책에 따른 추가 비용·향후 에너지 대책이다. 당장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들어간 비용이 이미 1조5000억원을 넘는다. 여기에 건설 중단에 따른 계약 파기로 2조원 이상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탈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중단이 맞물리면서 중장기적으로 전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원전 외에도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공정률 10% 미만 화력발전소 9기 전면 재검토 등을 정부가 약속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39.3%는 석탄이, 30.7%는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은 18.8%,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4.7%다. 하지만 공약에 따라 원전과 석탄화력 건설을 중단한다면 오는 2030년 원전 비중은 18%, 석탄은 25%로 떨어진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29년까지 계획된 발전설비 용량은 13만6097㎿다. 공약대로 원전과 화전이 사라지면 발전설비 용량은 11만2178㎿로 뚝 떨어진다. 만일 다른 발전원 대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남은 발전시설을 24시간 돌려도 ‘블랙아웃’ 리스크에 직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 발전을 포기할 게 아니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원전 비중은 30% 정도 되는데 최소 20% 안팎은 유지돼야 한다. 일본도 20~22%로 끌고 가겠다고 나섰다. 선진국인 영국도 원전의 안전성을 확신하고 있다. 소형 원전으로 가져가면 현재보다 안전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탈원전을 주장하는 측은 전력 수급과 에너지 안보 문제에 대해 ‘기우’라고 반박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과 화전을 줄이는 대신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을 20%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태양광·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투자해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전력량이 전체 전력 발전량의 20%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조용성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 교수는 “노후 원전이 전체 전력 수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 LNG발전소 가동률을 높인다면 수요가 증가하는 여름과 겨울에도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력 요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LNG를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는 물론 석탄에 비해서도 저렴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원자력 전기단가는 ㎾h당 62.69원이다. 그 뒤를 석탄(70.99원), 액화천연가스(150.29원), 신재생에너지(210.77원)가 잇는다.
원전을 폐쇄하고 석탄화력을 줄이면 결국 원가가 상승해서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원가 요인만 따지면 전력 요금이 평균 25%가량 오를 수 있다고 본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전을 전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고 가정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원전이 대표적인 반(反)환경 발전소로 지적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원전 진영에선 일단은 전기료 인상 부담을 한전이 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한전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전기요금이 해외보다 저렴한 만큼 일정 수준 인상은 감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전기요금은 OECD 대비 가정용은 약 70%, 산업용은 약 80% 정도다. 요금 상승분을 경영 효율화를 통해 약 10%는 상쇄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요금이 오르는지, 비용이 올라감에도 석탄과 원전 비율을 왜 낮춰야 하는지 설명하고 십시일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폐로 문제는 없나?
▷사용후 핵연료 폐기장 국내에 없어
전력 수급과 요금 문제 외에도 원자력발전소 폐쇄 이후 처리해야 할 문제는 많다.
일반적으로 ‘폐로’는 5년 동안 원자로를 냉각한 다음 방사성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구조물을 해체하고 부지를 복원하는 등 4단계로 진행한다. 적어도 15년은 걸린다.
방사능 오염도에 따라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주 방폐장으로 보내고, 원전 부속 건물처럼 방사능 오염도가 미미한 시설은 산업용 폐기물로 배출한다. 문제는 방사능 농도가 높은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다. 지진 우려가 없는 지하 500m 이상 암반에 밀폐 처리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처리장이 없어 현재 발전소에서 임시로 자체 보관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원전을 차례로 폐쇄하고 나면 발전소에서 보관 중이던 사용후 핵연료는 모두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송해야 하지만 현재는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계와 전력업계 일각에서 ‘준비 안 된 폐로 시대’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산한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은 6437억원이다. 방사성 폐기물·구조물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원전 해체 작업에 들어가는 사회적 갈등 비용 등을 고려하면 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물론 이번 기회에 폐로 기술을 확보해 산업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원전 해체는 관련 기술 개발뿐 아니라 해체 경험이 중요하다. 원전 해체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정도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해체 기술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도 시험용 원자로만 해체해봤다. 원전 해체 시장은 폭증할 수요를 고려하면 도전해볼 만한 시장”이라고 귀띔했다.
고리 원자력 1호기(사진) 폐쇄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