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고리원자력발전소 1,2호기

결국 ‘꿈★은 이루어졌다.’ 오랜 숙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자율성이 확보됐다.

25일 18시 서울시 광화문로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주한 미국대사와 새로 개정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 발효를 위한 외교각서를 교환했다. 지난 42년 간 미국의 일방적 통제 체제(구협정)를 신협정을 통해 상호적 권한 행사가 가능한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2010년 10월 시작된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과정에서 양국은 수십 차례의 정례협상과 수석대표 및 부대표급 협의를 가졌다. 특히 정부는 2014년 3월 18일 개정안 만료를 앞둔 2013년 4월 양국 수석대표협상에서 “기술적·세부적 사항의 복잡성 등을 감안해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한·미 원자력협정 2년간 잠정 연장’ 합의 이후 집중적인 협상을 전개했다.

지난 4월 22일 개정협상을 타결하고 6월 15일 윤병세 장관과 어니스트 모니즈(Ernest Moniz)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신협정에 정식 서명한 이후 양국은 신협정 발효를 위해 필요한 국내 절차를 각각 진행해 왔다. 현재 세계 5대 원전 강국인 우리나라는 지난 40여 년 간 핵비확산 체제를 준수하는 원전 모범국가이지만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에 대한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핵연료의 안정적인 공급과 포화상태에 이르는 국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문제해결을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계를 비롯해 원자력계의 숙원이었다.

◆세계 5대 원전國 위상 반영, 협력방식 협정에 포함
이날 한미 양국간 외교각서 교환에 따라 발효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골자로 본문 21개 조항과, 2개의 합의의사록으로 구성됐다.

이번 개정에는 국내에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 ▲재처리/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 ▲영구처분 ▲해외 위탁재처리 등 안전한 관리를 위해 어떠한 방안을 추진하게 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방식을 협정에 포함시켰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현재 우리가 보유한 시설(현존 연구시설)에서 ▲조사후시험(照射後試驗, Post-Irradiation Examination) ▲전해환원(電解還元, Electro-reduction) 등의 형상‧내용 변경활동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양국이 공동연구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기술에 대해서는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2011-2020)를 바탕으로 한 협의를 통해 합의해 추진할 수 있는 경로를 협정에 규정했다.

▲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 시험시설인 ACPF(Advanced spent fuel Conditioning Facility)를 구축해 사용후핵연료 전처리 공정 및 전해환원 공정 등 파이로프로세싱의 단위 공정 기술을 연구개발 해왔다.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는 “공동연구 결과를 기술적 타당성, 경제성, 핵비확산성 등 세부 기준과 구체 절차에 따라 평가해 파이로 활동에 대해 장기동의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며 “이러한 재처리/재활용 조항은 창의적 방식으로서 우리가 현재 보유한 시설에서의 활동에 대한 제약은 풀고 필요시 미래 활동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추진경로(pathway)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했다.

◆원전연료 수급 불균형시 상호 공급지원도 협의
또 이번 개정에는 핵연료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우리나라에 대해 미국이 원전연료 공급을 지원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향후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이 필요하게 되면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양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국내 원자력산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장기동의도 확보했다.

수출입 인허가를 보다 신속히 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를 서로 활발히 교류해 원전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신협정은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 중인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본격 생산의 길을 여는 성과도 거뒀다. 지금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몰리브덴(Mo)-99)를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수출할 수 있도록 미국의 장기동의를 확보했으며, 이는 125만 명에 달하는 암환자에 대한 핵의학 진단 등 우리 국민의 보건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신협정은 양국간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원자력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역사적 이정표가 됐다”며 “앞으로 양국은 신협정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긴밀한 협력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신협정 이행을 위한 첫 번째 조치로 차관급 상설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공동의장=외교부 제2차관/미 에너지부 부장관)를 이른 시일 내에 출범시키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며 덧붙였다.

외교부는 이를 위해 내년 1월초 고위급위원회 출범 사전 준비회의(planning session)를 갖고 ▲고위급위원회 주요 의제 및 운영 방식 △산하 4개 실무그룹별(△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핵안보) 구체적인 작업 계획 등 세부 사항을 협의할 예정이다.

◆원자력계, 원자력협정 체결 제3국 원전수출 ‘맑음’
이날 ‘한‧미 원자력협정’ 발효 소식을 접한 국내 원자력계는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이다.

그동안 국내 원자력계는 ▲한국정부의 핵비확산체제 ▲24기 국내 원전에 대한 원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문제의 해소 등을 위해 농축과 재처리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특히 파이로 프로세싱을 통한 기술적 난제들의 해결 가능성을 들어 협정의 전향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원자력계 관계자 A씨는 “신협정은 다른 원자력협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명시적인 권리 확인인 동시에 미국의 일방적인 통제권만 규정돼 있던 체제에서도 완전히 탈피해 상호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A씨는 “실제로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에 대해 미국의 회의적인 평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지난 40여 년간 핵비확산 체제를 준수하며 핵비확산 모범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이 농축기술을 전용할 것이라는 미국의 억측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국이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미래 활동을 추진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둔 점은 물론 원전연료 확보 측면에서도 이번 개정안은 우리에게 큰 수확”이라고 덧붙였다.

▲ 원자력연료 집합체 조립 광경

실제로 2009년 UAE 원전 수주경쟁 과정에서 당시 경쟁사(아레바)가 우리나라가 성형가공 이외에 원전연료 공급능력이 없어 “안정적인 연료 공급이 어렵다”는 취약성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이에 원전연료 자체 공급능력 확보가 국내 원전의 안정적 수급은 물론 원전 수출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한바 있다.

그러나 원전비리 스캔들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원전 기자재업계는 “미국산 주요 장비가 포함된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일정한 권한을 행사하듯이 국내 원자력산업계가 수출한 장비를 장착한 미국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은 실질적 의미가 있다”고 반겼다.

한편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안이 미국산 우라늄 20% 미만으로 저농축 가능, 원전 연료 공급방안과 원전 수출 등 몇 가지 개선된 점은 있었지만 당초의 희망사항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실질적인 내용은 결국 허용되지 않은 반쪽짜리 개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무의미한 성과라고 폄하하지만 우리 스스로 사용후핵연료를 깨뜨려 형상 및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장기동의를 확보한 것은 국내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진일보의 의미가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核주권 존중과 발전 가능성 감안…유효기간 20년 단축
신협정 서문에는 한미 양국은 핵비확산 조약(NPT)의 당사국으로서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연구‧생산 및 이용함에 있어서 갖는 ‘불가양의 권리(inalienable right)’를 확인하는 동시에 양국간 원자력 협력을 확대함에 있어 주권의 침해가 없어야 함을 명시했다.

특히 농축과 재처리 등 형상‧내용 변경을 포함한 제반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 ‘상대방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규정인 소위 ‘골드 스탠다드’로 알려진 농축‧재처리 포기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양국간 원자력협력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과 우리 원자력계의 역동적인 발전 가능성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감안해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대폭 단축했다.

다만 협정 만료 2년 전에 일방이 연장거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협정은 1회에 한해 5년 연장될 수 있지만 일방 당사국이 1년 전에 사전 통보만 하면 어느 때나 협정을 종료시킬 수도 있다.

출처 : 한국원자력신문 201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