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폐쇄 절차를 밟게 됐다.

지난 12일 에너지위원회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주재로 ‘제12차 회의’를 열고 부산시 고장군 소재 고리 1호기(가압경수로형(PWR), 설비용량 58만7000kW)의 영구정지(폐로)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37년 가동 중인 ‘고리 1호기’는 2007년 30년인 설계수명이 종료됐지만 정부로부터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17년 6월 18일까지 수명이 연장됐다. 또 2차 계속운전을 위해서는 설계수명기간 만료일 기준 2년 전(2015년 6월)인 오는 18일까지 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날 산업자원통상부는 브리핑을 통해 “에너지위원회는 2017년 6월 18일 1차 계속운전 운영허가기간이 만료되는 고리 1호기의 2차 계속운전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한국수력원자력에 권고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산업부는 고리 1호기 폐쇄 권고에 대해 “안전성, 경제성, 국민수용성,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했고 무엇보다 중장기적인 원전산업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는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과 영구정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일부는 한수원의 자체 안전성과 경제성 분석결과를 토대로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된다면 계속운전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수원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10개월간 한전기술을 통해 실시한 고리 1호기의 안전성 평가결과 원자력안전법상 기준인 158개 항목(원자로 시설 설계문서 등)에 대해 안전성 평가 기준을 모두 만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또 2차 계속운전이 지속될 경우 미실시 대비, 이용률(80%, 85%)과 판매 단가(2015년 추정치, 2014년 실적치 등) 등에 따라 1792~2688억 원의 이득이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폐로주장 위원들 “2차 계속운전 경제성 없다”
반면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위원들은 이 같은 경제성 평가에 계속운전 경제성에 일부 불확실성이 내포돼 있다고 주장했다. 2차 계속운전을 지속할 경우 추가 발생이 예상되는 지역지원금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반영된 신규원전 2기 등 원전 건설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경우 우리나라 전체 전력설비의 0.5% 수준을 담당하고 있는 고리 1호기를 폐쇄해도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원들은 해체산업 육성, 원전산업 전주기의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해 현재 시점에서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해체에 최소 15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2030년 이후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 해체시장 본격화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 해체기술 개발과 해체경험 축적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전 해체기술 역량은 선진 해체기술국 대비 70% 수준이다. 미래부를 중심으로 해체관련 38개 기술 중 미확보한 21개 기술개발을 추진 중이다.

위원들은 또 원전 해체산업 육성대책과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을 조속히 제시해 원전의 ‘건설-운영-해체-폐기물 관리’에 걸친 ‘전(全)주기적 원전 산업체계’를 완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편 고리 1호기의 2차 계속운전 신청기한을 6일 남겨두고 내린 결정에 운영사업자인 한수원을 비롯한 국내 원자력계가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비리 등으로 저하된 원전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태도는 결국 고리 1호기를 ‘정치공학적 산물’로 삼은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실제로 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결정이 3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국내 원자력계 안팎에서는 ‘고리 1호기의 폐로’가 설왕설래돼 왔다. 특히 원전에 대한 지역주민과 NGO단체의 반대여론에 원전소재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하나(신규원전)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고리 1호기 폐로)를 내줘야 한다”는 논리가 정치적 핵심키워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산업부의 권고안은 법적인 강제성을 띄지 않는다. 이에 한수원이 18일 이전까지 2차 계속운전에 대한 승인을 신청할 경우 원안위는 절차에 따라 심사를 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수원이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권고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오는 16일 이사회를 열고 2차 계속운전 승인신청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낮고 계속운전의 명분이 약해져 사실상 2차 계속운전 승인 신청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착잡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최초 원전 37년 간 맏형 역할 ‘톡톡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1번째 원전국가로 진입할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해 준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 첫 상업운전 시작한지 올해 37년째를 맞았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한반도를 ‘밝힐 불씨’였던 고리 1호기는 총 1560억7300만원이 투입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업으로 건설과 운영기술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도입했으며,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지조성공사와 일부 토건공사, 자재공급, 단순 노무인력 제공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고리 1호기는 숱한 복병과 난관, 기술 설움을 딛고 국민들에게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에너지자립의 초석을 다졌다.

또 지속적인 기술자립을 통해 1990년대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개발과 건설·시운전 및 운영경험을 최대한 반영해 차세대 원전인 신형경수로(APR1400)를 독자개발, 해외수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5월 현재 총 23기, 2만716MW의 원전 설비용량을 갖춘 세계 5위의 원자력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그 뒤에는 묵묵히 ‘맏형’의 역할을 수행해왔던 고리 1호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