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직접 '원전비리 근절' 칼 빼든 배경은?…한수원 독점체제 바뀔까?  
 

전남 영광 한빛 3호기./조선일보 DB

청와대가 원전 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를 주도하면서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이 독점했던 원전 사업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원전 구매·조달 제도 개편 및 한수원 감독 방안으로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에 의한 구조적인 비리사슬이 척결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국내 원자력발전 사업을 한수원이라는 단일 공기업이 독점하는 현재 사업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10일 에너지업계와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복수의 원전 전문가들에게 원전 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원전 찬성론자들 뿐 아니라 반핵(反核), 탈핵(脫核) 성향의 전문가들에게도 원전 비리 근절을 위해 현재의 한수원 독점체제를 개편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이같이 원전 사업구조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것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리근절방안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원전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원전비리근절 종합대책을 지난해 6월과 10월에 걸쳐 두 차례 발표했다. 당시 종합대책에는 원전 퇴직자의 유관업체 재취업 금지 등의 유착금지 방안과 원전 관련 입찰·구매 제도 투명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또 부품공급 등을 매개로 이뤄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원전산업의 경쟁촉진, 구매 및 품질 관리와 관련된 중장기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원전구매제도개선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같은 접근방식으로는 비리근절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으로 보인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산업부가 주도한 구매제도 개선 및 한수원 감독방안으로는 구조적인 비리사슬이 근절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수원 사업 및 조직구조 개편 등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주도했던 원전구매제도개선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6월에 위원회를 발족시켜서 9월까지 중장기 제도개선방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을 보고 원전 산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개편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도 정부는 문제가 된 몇몇 제도를 바꾸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중심의 원전비리근절 논의가 한수원 조직 및 사업구조 개편으로 흐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한수원 조직을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 파트로 나눠서 분리하는 방안과 현재의 한수원 조직을 지역 및 발전소 별로 쪼개서 분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첫번째 방안은 대부분의 원전 비리 사건이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이뤄지는 부품 납품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데서 착안됐다.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분리하게 되면 건설 과정에서 일어난 부적절한 거래가 전력생산 등을 책임지는 운영회사를 통해 사후적으로 적발될 수 밖에 없다는 취지다. 건설과 운영이 한 조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취약한 상호견제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두번째 방안은 현실론에 가깝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29%로 유지할 방침이다. 에너지 관련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에너지기본계획안 대로 하면 2020년까지 원자력발전소가 40개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면서 “40여개에 이르는 원자력 발전소를 한꺼번에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현재의 한수원을 몇개의 회사로 나누는 방안이 정부 내부에서 거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은 하나의 발전회사가 원자력발전소를 10개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해 복수의 발전회사가 원자력발전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조직 분리 방안은 신규 원전관련 조직이 방만해질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특정 학벌에 의해 유지·재생산되는 원전마피아의 근원을 끊어내지 않고 조직 분리 등으로 비리사슬을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자칫하면 원전과 관련된 조직과 종사자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조선비즈 2014.4.14